隱松 2023. 10. 2. 08:47

카르마 법칙이 참 true이라고 할 수 있는 첫 번째 증거는 인도의 최고 스승들이 이 법칙을 ‘진리’라고 가르쳤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해 스승이 가르쳤기 때문에 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범인들은 스승들의 경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스승들이 도달한 경지에 대해 ‘맞다, 그르다’ 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스승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인도 종교에서는 어떤 명제가 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려 할 때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스승이 가르친 것은 참이다’라는 것입니다. 이런 태도가 가능한 것은 앞에서 말한 대로입니다. 우리는 스승의 경지를 알 수 없으니 우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지요. 스승이 도달한 경지에 이르려면 스승이 제시한 것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나 힌두교가 주장하는 사제 체제에는 ‘진리를 깨치려면 스승에게 절대복종해야 한다’라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깨치지 못한 상태에 있기 때문에 어떤 스승이 깨달음의 경지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 그것입니다. 일단 스승을 정하면 내 모든 것을 그 스승에게 걸어야 하니 스승을 정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누가 깨친 스승인지를 모르니 어떤 스승을 택할지 정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문제이고 딜레마입니다.
따라서 제자가 스승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스승이 제자를 선택하는 것이 맞습니다. 세간에서는 제자가 먼저 스승을 찾아가 제자로 받아주기를 청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스승이 제자를 택하는 것입니다. 스승의 경지에서는 제자 후보들의 모든 것이 보이기 때문에 그 제자를 택할지, 택하지 않을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사제 관계가 형성된다면 제자는 자신을 택한 스승을 믿고 그에게 절대복종하는 일이 가능할 테지요. 그러면 그때부터 스승이 하는 말은 모두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자는 스승의 높은 경지를 모르니 섣불리 의문 갖는 것을 삼가고 스승을 절대 신임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원불교를 창시한 소태산 박중빈(1891~1943) 선생의 고제高弟로 그를 이어 제2대 종법사가 된 정산 송규(1900~1962) 선생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정산의 제자 중에 카르마 법칙을 부정하는 제자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이 제자는 당시 신식 학문으로 불린 유물론과 심리학 등을 배우더니 카르마 법칙의 진리성을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주제넘게 카르마 법칙은 그저 사람들에게 선행을 하게끔 유도하는 방편설에 불과한 것이지 그 법칙 자체가 진실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전통 불교신자 가운데에서도 이러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 특히 조금 배웠다 하는 엘리트 불교도들이 이처럼 주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불교도 중에는 환생이나 카르마론은 민간에서 주장하는 민속적인 믿음일 뿐이지 정통 불교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폄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쉽게 말해 윤회론 같은 것은 수준 낮은 교리에 불과하다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 정산은 단호했습니다. 그는 ‘(카르마 법칙은)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열려야 보이는 직관적인 세계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정산에 따르면 우리가 이 직관적인 세계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화두를 들고 참선하면서 강하게 집중해 정定의 상태에 들어가야 합니다. 여기서 정의 상태란 의식이 완전히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있는 기간이 보통이 아니더군요. 고요한 정의 상태를 석 달 이상 유지해야 카르마 법칙이 운용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니 말입니다. 며칠도 아니고 석 달 이상을 집중 상태로 있어야 한다니 도대체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반 범인들에게는 언감생심의 경지 같습니다.
이 같은 집중 상태에 대해서는 할 말이 아주 많습니다만 우리의 주제가 아니니 과감히 생략하기로 합시다. 다만 꼭 말하고 싶은 것은 보통의 우리는 단 1분도 그런 상태에 머물기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자꾸 산란해져 그러한 집중 상태를 오랫동안 지속하기가 어렵습니다. 오죽하면 우리의 마음을 1초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부산을 떠는 술 취한 원숭이에 비유하겠습니까?
그런데 고도의 집중 상태를 석 달 이상 유지해야 비로소 카르마 법칙이 운용되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니 이 법칙이 얼마나 귀중한 고급 정보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일상 의식에서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는 우리는 카르마 법칙에 대해 함부로 단정 짓지 말고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들어야 할 카르마 강의(최준식 지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