隱松 2023. 7. 10. 00:16

양극단에 빠진다는 것은 마치 자신이 실상사 안에 있으면서 실상사가 어디 있느냐며 허겁지겁 정신없이 찾는 경우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한심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가 뭘까. 지금 여기 자신의 참모습을 직접 마주하지 않고 그 밖에서 길을 찾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렇게 하는 한 내면적으로 하든 외면적으로 하든, 정신적으로 하든 물질적으로 하든, 심리적으로 하든 육체적으로 하든 세세생생토록 다람쥐 쳇바퀴 도는 꼴을 면할 길이 없다. 참으로 겁나는 일이다. 반면 중도적으로 하는 것은 지금 여기 자신의 참모습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순간 본인이 서 있는 곳이 실상사임을 잘 알게 된다. 아무 거리낌 없이 그 안에서 무사태평하고 자유자재하게 자리이타의 삶을 마음껏 펼칠 수 있다. 얼마나 통쾌한가.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 열쇠는 중도의 길을 가는 데 있다. 중도실상,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을 직접 마주하면 ‘좋네, 나쁘네’ 하는 인위 조작, ‘맘에 드네, 안 드네’ 하는 제2의 화살인 분별망상(탐·진·치)이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 절대 발붙이지 못한다. 마치 코끼리의 참모습에 대한 잘못된 정보로 인해 무지와 착각의 편견에 사로잡혀 싸움질하는 사람들이 실물 코끼리를 직접 마주하는 순간 할 말을 잃게 되는 것과 같다. 주장도, 싸움도 멈추게 된다. 바로 고요해진다. 편안해진다. 무사태평해진다. 어떤가? 어려운가, 쉬운가?

도법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