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괴롭히는 그 사람은..

인간이 겪는 심리적 고통 대부분은 자발적인 것이며 스스로 초래한 고통입니다. 이 진리는 부처님의 무척 위대한 발견 중 하나입니다. 또한 우리가 반드시 겪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발달단계인 동시에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고통이기도 합니다. 제가 말하려는 것 또한 결국 이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생각을 굳게 믿습니다. 우리가 존재하기 버겁고, 어렵고, 복잡하게 하는 그런 생각 말입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내면의 어딘가에서 우리는 삶의 수많은 고통이 자기 자신의 생각 때문에 발생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고통은 대부분 외부의 사건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끊임없이 이는, 즉 우리가 믿거나 믿지 않는 생각 때문에 일어나지요. 우리의 마음. 그곳이야말로 우리의 고통이 움을 틔우는 곳이며 생육하고 번성하는 곳입니다. 우리가 말리지 않는 한 그 생각은 마음껏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을 겁니다.
그러나 마음의 고통이 내 안에서 나왔다는 것을 알더라도 아픔이 덜해지진 않습니다. 그 앎 자체로는 조금도 고통을 덜어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그 사실을 이해하면 고통을 새로운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에게 떠오르는 모든 생각을 믿지 말아야 하는 주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고통이 자기 안에서 출발한다는 통찰력을 갖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머리로는 알아도, 진심으로 받아들이려면 아주 겸손해야 합니다. 고통이 저 자신에게서 출발한다고 받아들여 버리면 이제 상황이나 다른 사람을 탓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때 비로소 새로운 질문이 떠오릅니다. 자기 생각이나 감정을 어떤 식으로 다뤄야 괴롭지 않을 수 있을까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을 탓하기 좋아합니다. 우리 중 많은 이가 이런 생각을 품고 살아가지요. “만일 내 부모님이 다른 분이었다면… 직장 동료들이 그렇게 못되게 굴지만 않았어도… 정치인들만 좀 제대로 했어도….” 그런 굴레에 자꾸만 빠지는 인간의 속성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아의 근본적인 속성이거든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죠. 삶이 힘들어지고 심리적 압박을 겪을 때, 남을 손가락질하는 것이 훨씬 편한 데다가 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하지만 불쾌하고 불편하더라도 언젠가 반드시 자신에게 스스로 물어야 하는 질문이 있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나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바로 지금, 바로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지?’
세상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변화합니다. 변화의 방향은 우리가 원하는 것과 대체로 무관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누군가가 우리 생각대로 바뀌어야만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압박감, 슬픔, 외로움, 불안, 초라한 기분에 시달린다면 보통 거기에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가 집착하며 좀처럼 놓지 못하는 어떤 ‘생각’이 불행감을 초래하는 겁니다. 그런 생각은 대체로 그 자체로 보면 꽤 합리적이고 그럴싸합니다. 누군가가 뭘 ‘했어야 했다’라는 식이죠. 예컨대 ‘아빠는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요’, ‘엄마는 그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어요’, ‘명색이 친구들인데 그런 건 기억했어야 하는 거 아냐?’, ‘자식들이 좀 더 돌봐줬어야지’, ‘상사가 그 정도는 알았어야지’, ‘배우자가 말이나 행동을 다르게 했다면’ 하는 식이지요.
이보다 더욱 고통스러운 생각은 ‘내가 그랬어야 했다’라는 생각입니다. 예컨대 ‘내가 달라졌어야 했는데’, ‘내가 더 현명했어야 했는데’, ‘내가 더 열심히 일했어야 했는데’, ‘더 돈이 많았어야, 더 나았어야, 더 날씬했어야, 더 성숙했어야 했는데’. 이 함정에 빠지면 영원히 헤어 나올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들이 마구 날뛸 때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먼저 조심스럽게 한 발짝 멀어집니다. 그러고는 말하는 겁니다.
‘그래, 알았어.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 지음, 박미경 옮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