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에 대한 글

소통 원리 1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라
소통을 잘하려면 자신이 아니라 상대방을 보아야 한다. 싸움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서로 자기 이야기만 한다는 것이다. 온통 나의 주장을 어떻게 상대방에게 전달할 것인가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있다. 그래서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런데 자기 것을 강조할수록 서로의 차이만 점점 더 부각되고, 그 결과 두 사람 사이의 거리만 더 생긴다. 분명히 소통을 잘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명백하게 주장했을 뿐인데, 정작 소통의 벽만 두꺼워지는 것을 느낄 뿐이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소통은 말을 하는 사람(화자:話者)과 말을 듣는 사람(청자: 聽者)이 있을 때 일어난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화자의 입에서 나온 말은 청자의 귀를 통해서 전달된다. 화자가 어떤 생각과 의도를 갖고 말을 했을지라도 그 말의 의미는 청자가 어떻게 들었느냐에 따라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진짜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해야 하는가 보다, 상대방이 자신의 말을 어떻게 듣느냐에 더 관심을 가진다."
소통 원리 2
똑같은 말이라도 이해하는 것은 제각각이다
소통의 수단은 말이다. 말은 빙산과 같다. 빙산에는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 빙산을 과소평가하다가 크게 다친 배들의 이야기가 많다. 즉 보이는 것만 지나치게 확신하다가 큰 낭패를 당한 경우다. 말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별다른 생각 없이 그냥 한 말인데 상대방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또 그런 경험을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이야기를 하게 될까 말하는 것이 두려워진다. 그래서 말을 칼 또는 비수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왜 말이 상처가 되는 것일까? 10명에게 집이라는 단어를 주고, 그것을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하면 한 개의 집이 아니라 10개의 집이 나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즉 집이라는 단어가 매우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경험, 성격, 가치관, 문화에 따라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바는 저마다 다르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인에게 집은 아파트지만, 독일인에게는 단독 주택이 집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자기가 경험한 집만이 집이고, 다른 사람이 경험한 것은 집이 아니라고 확신에 차서 말한다면 이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람들마다 각자 보는 위치가 다르기 때문에 내 위치에서는 잘 보이는 것이지만, 상대방의 위치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지 못한다. 그래서 설득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소통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소통원리 3
다름을 인정하자.
소통은 다른 것들과의 만남이다. 언제 소통이 잘 되느냐고 질문하면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랑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났을 때 소통이 잘 된다.” 소통이 안 되는 것은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인터넷 동호회가 활발한 것도 바로 서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소통문제가 덜 생길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피곤하게, 또는 비효율적으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의 만남인 소통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동양의 음양철학에 의하면 모든 것들은 서로 상극 또는 다른 것들이 조화를 이룰 때 생명력을 갖게 된다. 소통이 잘 되면 우리는 힘을 느낀다. 그런데 그 힘은 바로 서로 다른 것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제각기 제 잘 낫다고 우기지 않고,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서 나갈 때 나오는 것이다. 만일 비슷한 것들과의 만남만을 고집한다면 이는 바로 소통의 힘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소통의 원리는 막힌 관계를 시원하게 뻥 뚫어주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소통의 원리는 자기보다 상대방을, 말보다는 서로의 마음을, 같은 것보다는 다른 것을 볼 수 있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소통이 잘 된다고 말할 수 있다.
참여와 혁신.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