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과 위력
말의 힘과 위력

아주 오랜 옛적부터 인도인들은 진실한 말에는 큰 위력이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사상이 발전하여 체계화된 것이 바로 진언(眞言), 만뜨라(mantra, 呪文), 다라니(dharaṇī) 등이다. 불교에서도 진실한 말씀, 즉 진실어(眞實語)에는 위대한 힘[威神力]이 있다고 말한다. 현재 남방 상좌부불교의 의식문에도 그러한 내용이 나온다.
Natthi me saraṇam aññaṃ Buddho me saraṇaṃvaraṃ.
Etena saccavajjena vaḍḍheyyaṃ satthu sāsane,
Buddhaṃ me vandamānena, yaṃpuññaṃpasutaṃ idha,
Sabbepi antarāyā me, māhesuṃ tassa tejasā.
“저에게는 다른 의지처가 없습니다.
부처님은 저의 고귀한 의지처입니다.”
이러한 진실을 말함으로써,
스승의 가르침이 널리 퍼지기를!
제가 부처님께 예경 함으로써 지은 이 공덕과
그 위력으로 모든 장애가 극복되기를!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5)가 인도의 독립을 위해 펼쳤던 비폭력 저항 또는 시민 불복종 운동이었던 ‘사티아그라하(satyāgraha, 眞理把持)’도 그 뿌리는 진실한 말씀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궁극에는 진리가 승리한다는 확신이다.
말에는 위대한 힘과 위력이 있으므로 말하기 전에 반드시 ‘이 말을 해야 하는가?’, ‘말을 해야 한다면 언제 할 것인가?’, 그리고 ‘이 말을 어떤 방법으로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부처님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부주의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고 제자들에게 수없이 반복해야 강조했다. 말은 모든 다툼과 재앙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또한 누가 말한 것이냐에 따라 그 파장이 달라진다. 이를테면 똑같은 말을 범부들이 술자리에서 한 말은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그 말을 문제 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정치인이나 사회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 한 말이라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요즘 정치인들의 말로 인해 사람들은 크게 상처받고 있다. 심사숙고하지 않고 부주의하게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앙굿따라 니까야>의 ‘짜뚜마하라자 숫따(Catumahārāja-sutta, 四大天王經)’(AN3:37)에 따르면, 신들의 왕인 삭까(Sakka, ‘인드라신’을 말함)가 도리천의 신들에게 이렇게 게송을 읊었다.
나처럼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14일, 15일, 상현 하현의 8일에
여덟 가지를 갖춘 포살을 준수해야 하고
연속적으로 행하는 [포살]을 해야 하리.
그러자 붓다는 신들의 왕인 삭까가 읊은 게송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신들의 왕인 락까는 탐욕‧성냄‧어리석음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붓다는 삶의 족쇄를 부수었고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아라한이 그 게송을 읊었다면 적절하다고 말했다.
또한 붓다는 신들의 왕인 삭까가 읊은 게송이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신들의 왕인 락까는 태어남‧늙음‧죽음‧근심‧탄식‧고뇌‧절망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 아라한은 번뇌를 제거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고,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했다. 그러므로 그런 아라한이 그 게송을 읊었다면 적절하다고 말했다.
이 경전의 말씀은 똑같은 내용의 게송을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진리가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쓸데없는 헛소리가 될 수도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경전에 나오는 수많은 좋은 글귀들을 SNS에 옮겨 놓는다고 해서 진리의 말씀이 되는 것이 아니다. 말한 자의 삶과 인격이 그 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허공의 메아리에 불과하다. 그래서 앎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의 말과 주장은 힘이 없다. 그러나 앎과 삶이 일치하는 진실한 말씀[眞實語]에는 위대한 힘이 있으므로 때로는 큰 위력을 발휘한다.
2023. 8. 4.
마성/ 팔 리 문헌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