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기원경(디가니까야)

2023. 6. 13. 00:46여러 가르침 (經,律,論)


[광음천에서 온 중생들]


여기서부터 본경의 본론이라 할 수 있는 세상의 기원(aggaññā)에 대한 가르침이 시작된다.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은 세존께서는 와셋타와의 대화를 통해서 중생은 범천이나 어떤 특정 인격체가 다스리거나 지배하거나 창조한 것이 아니라, 법(dhamma)에 의해서 그 법칙에 따라 나고 죽고 거듭하며, 이 세상도 이러한 법칙에 따라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면서 유장하게 흐르고 흘러간다고 본경에서 담담하게 설명하고 계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법을 따르고 법을 거스르는 모든 행위는 그대로 이 세계와 중생의 수명에 반영되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해야 한다.

10. “와셋타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이 수축하는 그런 시기가 있다.(7) 세상이 수축할 때 대부분의(8) 중생들은 광음천에 나게 된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오랜 세월을 산다.

와셋타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이 팽창하는 그런 시기가 있다. 세상이 팽창할 때 대부분의 중생들은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서 이곳 [인간계로] 오게 된다.(9) 그들은 여기서도 역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오랜 세월을 살게 된다.”

<주7> ‘그런 시기가 있다.’로 옮긴 원어는 hoti kho so samayo인데 직역하면 ‘있다 참으로 그 시기가’이다. 여기서 핵심 단어는 samaya인데 일반적으로 ‘시간, 기간, 때’ 등으로 옮기는 단어이다. 이 단어는 다양한 문맥에서 나타나는데 특히 아비담마에서도 yasmiṁ samaye cittaṁ uppanaṁ hoti로 쓰여서 마음이 일어나는 특정 순간이나 시점을 뜻하는 술어로 사용되었으며 이것이 아비담마 주석서 문헌들에서는 찰나(khaṇa, khaṇika)의 개념으로 발전하고 있다.(『청정도론』 서문 §12 상좌부불교의 발전 단계 참조) 세존께서는 항상 이처럼 특정시점을 samaya로 제시 하시면서 말씀을 전개하신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부처님께서는 이런 samaya라는 술어를 사용하여 태초니 하는 우주의 최초의 시점을 부정하신다는 것이다. 그러나 논의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특정시점 즉 samaya를 설정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본경을 통해서 부처님께서는 우주는 수축과 팽창을 무수히 반복하고 있음을 암묵적으로 제시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주가 수축하는 특정시점을 시작점으로 삼아서 어떻게 중생이 타락과 향상을 거듭하는가를 보여 주고 계신다.

<주8> “‘대부분(yebhuyyena)’이라는 것은 범천 이상의 세상이나 무색계에 태어난 자들을 제외한 신들을 두고 한 말이다.”(DA.i.110) 선(禪)을 닦아서 색계와 무색계에 도달한 수승한 신들은 우주의 팽창과 수축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9> “‘이곳으로 오게 된다.(itthattaṁ āgacchanti)’라는 것은 여기에 인간이 되어(manussatta) 오게 된다는 [말이다.]”(DA.iii.865)

 
[딸콤한 땅의 출현]

11. “와셋타여, 그런 시기에는 완전히 하나인 물만으로 되어 있으며 거기에는 암흑과 칠흑 같은 어두움만이 있다. 태양과 달도 알려지지 않고 별들도 알려지지 않고 별의 무리들도 알려지지 않고 밤과 낮도 알려지지 않고 한 달과 보름도 알려지지 않고 계절과 연도도 알려지지 않고 여자와 남자도 알려지지 않고 중생들은 다만 중생이라는 용어로 불릴 뿐이다.(10)

와셋타여, 그러자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달콤한 땅이 물 위에 퍼지게 되었다. 마치 끓인 우유가 식으면 그 위에 엷은 막이 생기는 것처럼 그와 같이 나타났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갖추었고 향기를 갖추었고 맛을 갖추었다. 마치 정제된 버터기름과 정제된 생 버터처럼 그와 같은 색깔을 가졌다. 그것은 마치 순수한 벌꿀처럼 그러한 맛을 가졌다.”(11)

<주10> 이것이 우주가 팽창하는 어떤 겁의 태초 인간계의 모습이다. 그것은 완전히 하나의 물 혹은 액체로 된(ekodakībhūta) 세상이다.
<주11> 수많은 세월이 흘러서 물 혹은 액체가 점점 굳어져 ‘달콤한 땅(rasapaṭhavī)이 되고 그것을 먹어본 사람들에게는 마침내 탐심이 생기게(lolajātika) 된다. 이렇게 탐심(lola)이 근본이 되어 신과 같던 인간은 물질의 세상과 섞이게 된다. 이렇게 해서 점점 인간은 타락해갔다.


[달과 태양 등의 출현]

12. “와셋타여, 그러자 어떤 중생에게 ‘오, 참으로 이것이 무엇일까?’라는 탐심이 생겼다. 그는 손가락으로 달콤한 땅을 맛보았는데 그 맛은 그를 뒤덮었고 갈애가 엄습해왔다. 와셋타여, 다른 중생들도 그 중생을 본보기로 따라하여 손가락으로 달콤한 땅을 맛보았는데 그 맛은 그들을 뒤덮었고 갈애가 엄습해왔다.

와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들은 달콤한 땅을 손으로 한 덩어리씩 깨어서 먹기 시작했다.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달콤한 땅을 손으로 한 덩어리씩 깨어서 먹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들이 본래 타고난 광채가 사라져 버렸다. 본래 타고난 광채가 사라지자 태양과 달이 드러났다. 태양과 달이 드러나자 별들과 별의 무리들도 드러났다. 별들과 별의 무리들이 드러나자 낮과 밤이 알려지게 되었다. 낮과 밤이 알려지자 한 달과 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한 달과 보름이 알려지자 계절과 연도가 알려지게 되었다. 와셋타여, 이렇게 하여 이 세상은 다시 팽창하는 것이다.”

13. “와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들은 달콤한 땅을 먹을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음식으로 삼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삼아서 긴 세월을 보내었다.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달콤한 땅을 먹을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음식으로 삼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삼아서 긴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 중생들의 몸은 견고하게 되었고 잘 생기고 못생긴 용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어떤 중생들은 잘생기게 되었고 어떤 중생들은 못생기게 되었다.

그러자 잘생긴 중생들은 못생긴 중생들에게 ‘우리는 이들보다 잘생겼다. 이들은 우리보다 못생겼다.’라고 거만을 떨었다. 그들이 잘생긴 것으로 거만을 떠는 것을 반연하여 자만과 거만이 생기자 달콤한 땅은 사라져 버렸다. 달콤한 땅이 사라지자 그들은 함께 모여서 ‘오, 달콤한 것이여. 오, 달콤한 것이여.’라고 소리 내어 울었다.

그래서 지금도 인간들은 아주 맛난 것을 얻은 뒤 ‘오, 달콤한 것! 오, 달콤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태고적 세상의 기원과 관계된 단어를 기억하기 때문인데 그 뜻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땅의 부산물의 출현]

14. “와셋타여, 그 중생들에게 달콤한 땅이 사라지자 그때 땅의 부산물이 생겨났다. 그것은 마치 버섯이 생기듯이 그와 같이 생겨났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갖추었고 향기를 갖추었고 맛을 갖추었다. 마치 정제된 버터기름과 정제된 생 버터처럼 그와 같은 색깔을 가졌다. 그것은 마치 순수한 벌꿀처럼 그러한 맛을 가졌다.

와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들은 땅의 부산물을 먹기 위해서 다가갔다. 그들은 그것을 먹을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음식으로 삼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삼아서 긴 세월을 보냈다.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땅의 부산물을 먹을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음식으로 삼고 영양분으로 삼아서 긴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 중생들의 몸은 더욱더 견고하게 되었고 잘생기고 못생긴 용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어떤 중생들은 잘생기게 되고 어떤 중생들은 못생기게 되었다. 그러자 잘생긴 중생들은 못생긴 중생들에게 ‘우리는 이들보다 잘생겼다. 이들은 우리보다 못생겼다.’라고 거만을 떨었다.

그들이 잘생긴 것으로 거만을 떠는 것을 반연하여 자만과 거만이 생기자 땅의 부산물은 사라져 버렸다. 그 중생들에게 땅의 부산물이 사라지자 그때 바달라따 덩굴이 생겨났다. 그것은 마치 죽순이 생기듯이 그와 같이 생겨났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갖추었고 향기를 갖추었고 맛을 갖추었다. 마치 정제된 버터기름과 정제된 생 버터처럼 그와 같은 색깔을 가졌다. 그것은 마치 순수한 벌꿀처럼 그러한 맛을 가졌다.”

15. 와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들은 바달라따 덩굴을 먹기 위해서 다가갔다. 그들은 그것을 먹을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음식으로 삼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삼아서 긴 세월을 보냈다.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땅의 부산물을 먹을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음식으로 삼고 영양분으로 삼아서 긴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 중생들의 몸은 더욱더 견고하게 되었고 잘생기고 못생긴 용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어떤 중생들은 잘생기게 되고 어떤 중생들은 못생기게 되었다.

그러자 잘생긴 중생들은 못생긴 중생들에게 ‘우리는 이들보다 잘생겼다. 이들은 우리보다 못생겼다.’라고 거만을 떨었다. 그들이 잘생긴 것으로 거만을 떠는 것을 반연하여 자만과 거만이 생기자 바달라따 덩굴이 사라져 버렸다. 바달라따 덩굴이 사라지자 그들은 함께 모여서 ‘오, 참으로 우리는 어쩌란 말이냐, 오, 참으로 우리는 바달라따를 잃었도다.’라고 소리 내어 울었다.

그래서 지금도 인간들은 어떤 괴로운 것을 겪으면 ‘오, 참으로 우리는 어쩌란 말이냐. 오, 참으로 우리 것을 잃어 버렸도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태고적 세상의 기원과 관계된 단어를 기억하기 때문인데 그 뜻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

[경작하지 않고도 익는 쌀의 출현]

16-1. “와셋타여, 그 중생들에게 바달라따 덩굴이 사라지자 그때 경작하지 않고도 익는 쌀이 생겨났다. 그것은 속껍질도 없고 겉껍질도 없고 깨끗하고 향기로운 쌀열매였다. 그들이 저녁에 저녁식사를 위해서 가져가면 아침에 익어서 원래대로 다 자라 있었고 아침에 아침식사를 위해서 가져가면 저녁에 익어서 원래대로 다 자라 있었으며 [껍질 등] 버릴 것이라고는 없었다. 와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들은 경작하지 않고도 익는 쌀을 먹을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음식으로 삼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삼아서 긴 세월을 보내었다.

[여자와 남자의 성기의 출현]

16-2.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경작하지 않고도 익는 쌀을 먹을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음식으로 삼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삼아서 긴 세월을 보내는 동안 그 중생들의 몸은 더욱더 견고하게 되었고 잘생기고 못생긴 용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여자에게는 여자의 성기(12)가 생겼고 남자에게는 남자의 성기가 생겼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지나치게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들이 서로서로 지나치게 골똘히 생각하자 애욕이 생겨났고 몸에는 [애욕으로 인한] 열이 생겨났다. 그들은 [애욕의] 열을 반연하여 성행위를 하게 되었다.

와셋타여, 그 시절의 중생들은 성행위를 하는 것을 보면 ‘불결한 것은 사라져 버려라, 불결한 것은 사라져 버려라. 어떻게 중생이 중생에게 저런 식으로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면서 어떤 자들은 흙먼지를 던지고 어떤 자들은 재를 던지고 어떤 자들은 소똥을 던졌다.

그래서 요즘에도 인간들은 어떤 지방에서는 신부를 데리고 갈 때에 어떤 자들은 흙먼지를 던지고 어떤 자들은 재를 던지고 어떤 자들은 소똥을 던진다. 이것은 태고적 세상의 기원과 관계된 단어를 기억하기 때문인데 그 뜻은 잘 알지 못하고 있다.”(13)

<주12> ‘여자의 성기’와 ‘남자의 성기’는 각각 itthi-liṅga와 purisa-liṅga의 역어이다. liṅga는 문맥에 따라 특징도 되고 성기도 되고 문법의 남성명사 등의 성도 된다. 여기서는 문맥상 남녀의 성기를 뜻한다.

<주13> 부처님 당시에 인도의 어떤 지방에서는 결혼식 때 신랑에게 이렇게 하는 풍습이 있었던 것 같다. 부처님께서는 이런 풍습이 태고적 세상의 기원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하신다.

[성행위를 저지름]

17. “와셋타여, 그 시절에 비법(非法)으로 간주되었던 것이 지금에는 법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와셋타여, 그 시절에 중생들은 성행위를 하게 되면 한 달이건 두 달이건 마을이나 읍에 들어가지를 못했다. 와셋타여, 그 중생들은 그러한 비법에 대해서 아주 심하게 비난을 받았기 때문에 그러한 비법을 가리기 위해서 집을 짓게 되었다.

와셋타여, 그러자 어떤 게으른 중생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 나는 왜 저녁에 저녁식사를 위해서 쌀을 가져오고 왜 아침에 아침식사를 위해서 쌀을 가져와야 하는가! 참으로 나는 아침과 저녁식사 거리로 한꺼번에 쌀을 다 가져와야겠다.’라고. 와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은 아침과 저녁식사 거리로 한꺼번에 쌀을 가지고 왔다.

와셋타여, 그러자 다른 중생이 그에게 다가왔다. 와서는 그 중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이리 오시오. 쌀을 가지러 갑시다.’ ‘여보시오, 나는 충분합니다. 나는 아침과 저녁식사 거리로 한꺼번에 쌀을 가지고 왔습니다.’ 와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은 ‘여보시오, 그렇군요. 이렇게 하니 참으로 좋군요.’라고 하면서 그를 본보기로 따라하여 아침과 저녁식사 거리로 한꺼번에 쌀을 가지고 왔다.

와셋타여, 그러자 또 다른 중생이 그에게 다가왔다. 와서는 그 중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이리 오시오. 쌀을 가지러 갑시다.’ ‘여보시오, 나는 충분합니다. 나는 아침과 저녁식사 거리로 한꺼번에 쌀을 가지고 왔습니다.’ 와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은 ‘여보시오, 그렇군요. 이렇게 하니 참으로 좋군요.’라고 하면서 그를 본보기로 따라하여 아침과 저녁식사 거리로 한꺼번에 쌀을 가지고 왔다.

와셋타여, 그러자 또 다른 중생이 그에게 다가왔다. 와서는 그 중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이리 오시오. 쌀을 가지러 갑시다.’ ‘여보시오, 나는 충분합니다. 나는 아침과 저녁식사 거리로 한꺼번에 쌀을 가지고 왔습니다.’ 와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은 ‘여보시오, 그렇군요. 이렇게 하니 참으로 좋군요.’라고 하면서 그를 본보기로 따라하여 아침과 저녁식사 거리로 한꺼번에 쌀을 가지고 왔다.

와셋타여, 그 중생들이 축적을 하면서 쌀을 먹기 시작하자 속겨가 쌀을 에워쌌고 겉겨가 쌀을 에워쌌다. 베어도 다시 자라지 않았고 결핍이란 것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벼는 무리를 지어 자라게 되었다.”

[쌀의 배분]

18. “와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들은 함께 모였다. 함께 모여서는 ‘존자들이여, 사악한 법들이 중생들에게 생겨났습니다. 우리는 전에는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았고 스스로 빛났고 허공을 다녔고 천상에 머물렀으며 길고 오랜 세월 살았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달콤한 땅이 물 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갖추었고 향기를 갖추었고 맛을 갖추었습니다. 그런 우리는 그 달콤한 땅을 손으로 한 덩어리씩 깨어서 먹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달콤한 땅을 손으로 한 덩어리씩 깨어서 먹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가 본래 타고난 광채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본래 타고난 광채가 사라지자 태양과 달이 드러났습니다. 태양과 달이 드러나자 별들과 별의 무리들도 드러났습니다. 별들과 별의 무리들이 드러나자 낮과 밤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낮과 밤이 알려지자 한 달과 보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한 달과 보름이 알려지자 계절과 연도가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달콤한 땅을 먹을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음식으로 삼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삼아서 긴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사악한 해로운 법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달콤한 땅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달콤한 땅이 사라지자 그때 땅의 부산물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갖추었고 향기를 갖추었고 맛을 갖추었습니다. 그런 우리는 땅의 부산물을 먹기 위해서 다가갔습니다. 그런 우리는 그것을 먹을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음식으로 삼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삼아서 긴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사악한 해로운 법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땅의 부산물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땅의 부산물이 사라지자 그때 바달라따 덩굴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움을 갖추었고 향기를 갖추었고 맛을 갖추었습니다. 그런 우리는 바달라따 덩굴을 먹기 위해서 다가갔습니다. 그런 우리는 그것을 먹을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음식으로 삼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삼아서 긴 세월을 보내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사악한 해로운 법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바달라따 덩굴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바달라따 덩굴이 사라지자 그때 경작하지 않고도 익는 쌀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속껍질도 없고 겉껍질도 없고 깨끗하고 향기로운 쌀열매였습니다. 그런 우리가 저녁에 저녁식사를 위해서 가져가면 아침에 익어서 원래대로 다 자라 있었고 아침에 아침식사를 위해서 가져가면 저녁에 익어서 원래대로 다 자라 있었으며 [껍질 등] 버릴 것이라고는 없었습니다. 그런 우리는 경작하지 않아도 익는 쌀을 먹을 것으로 삼고 그것을 음식으로 삼고 그것을 영양분으로 삼아서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사악한 해로운 법들이 생겨났기 때문에 속겨가 쌀을 에워쌌고 겉겨가 쌀을 에워쌌습니다. 베어도 다시 자라지 않았고 결핍이란 것이 알려지게 되었으며 벼는 무리를 지어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제 참으로 우리가 벼를 나누어야 합니다. 경계를 설정해야 합니다.’라고.

와셋타여, 그러자 그 중생들은 벼를 나누게 되었고 경게를 설정하게 되었다.”

19. “와셋타여, 그러자 어떤 중생이 탐심이 생겨서 자기의 몫은 잘 챙겨두고 다른 사람의 몫은 주지 않았는데도 가져가서 먹었다. 이런 사람을 붙잡았다. 붙잡아서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중생이여, 그대는 사악함을 행하였소. 자기의 몫은 잘 챙겨두고 다른 사람의 몫은 주지 않았는데도 가져가서 먹었소. 여보시오 중생이여,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마시오.’

와셋타여, ‘알겠습니다, 존자들이여.’라고 그 중생은 다른 중생들에게 대답하였다. 와셋타여, 두 번째로 … 세 번째로 어떤 중생이 탐심이 생겨서 자신의 몫은 잘 챙겨두고 다른 사람의 몫은 주지 않았는데도 가져가서 먹었다. 이런 사람을 붙잡았다. 붙잡아서 이렇게 말했다. ‘여보시오 중생이여, 그대는 사악함을 행하였소. 자기의 몫은 잘 챙겨두고 다른 사람의 몫은 주지 않았는데도 가져가서 먹었소. 여보시오 중생이여,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마시오.’라고. 어떤 자들은 손으로 그를 때렸다. 어떤 자들은 흙덩이로 때렸다. 어떤 자들은 몽둥이로 때렸다.

와셋타여, 그때부터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비난이 알려지게 되었다. 거짓말이 알려지게 되었다. 처벌이 알려지게 되었다.”

[출처] 각묵스님 옮김 『디가니까야』


'여러 가르침 (經,律,論)'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깨달음의 종교  (2) 2023.06.18
그대로에 머물라.  (0) 2023.06.15
삼귀의 오계에 대한 가르침.  (0) 2022.08.14
求法(구법)  (0) 2022.08.10
應. 순응  (0) 2022.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