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로에 머물라.

2023. 6. 15. 06:52여러 가르침 (經,律,論)

도가 앞에 나타나기를 바란다면
따라가지도 말고 거스르지도 말라.    
  
욕득현전(欲得現前) 막존순역(莫存順逆)
  


중국 당나라 때의 선승
禪僧인 도오道悟에게 어느 날 한 젊은이가 찾아와 넙죽 절을 하며 제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도오가 물었다.
“무엇을 구하느냐?”
“진리를 알고 싶습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곳에 머물러라. 너에게 불법을 가르쳐 주겠다.”
그 젊은이는 뛸 듯이 기뻐하며 몇 년 동안 도오를 지극정성으로 섬겼다.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도오는 도무지 그에게 가르침을 줄 생각조차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하루는 젊은이가 몹시도 섭섭한 마음이 들어 스승에게 가서 따지듯 물었다.
“스님, 왜 제게 불법을 가르쳐 주지 않습니까?”
그러자 도오는 오히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는 이렇게 말했다.
“아니 이놈아, 수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가르쳤더니,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젊은이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스님을 바라보며 말했다.
“뭐라고요? 저를 하루도 빠짐없이 가르쳤다고요? 아니, 도대체 언제 저를 가르쳤습니까? 저는 가르침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허허, 이놈 봐라!’
도오는 제자의 표정을 살피며 금방이라도 웃음을 터뜨릴 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젊은이는 화가 치밀었다.
“스님, 대답해 보십시오! 언제 제게 불법을 가르쳐 주셨습니까? 저는 도무지 가르침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제자의 붉게 상기된 얼굴을 빤히 바라보면서 도오는 달래듯 이렇게 말했다.
“아, 이 녀석아, 네가 차를 가져오면 마셔 주었고, 밥을 가져오면 먹어 주었고, 인사를 하면 머리를 숙여 받아 주지 않았느냐. 네가 말을 걸어오면 대꾸해 주었고…….”
젊은이는 어리둥절해졌다. 스승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흡사 자기를 놀리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설마 스승님이 제자를 데리고 장난하고 계신 것은 아니겠지?’
젊은이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때 도오가 정색하며 무섭게 소리쳤다.
“이놈아,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생각하면 곧 어긋나는 것이야! 있는 그대로 보란 말이다!”
그 말에 젊은이는 퍼뜩 깨쳤다.

무분별의 지혜(김기태 지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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