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하기 싫을때.

2023. 6. 28. 07:01여러 가르침 (經,律,論)

이따금 불안하고 우울하고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가끔씩 초조하고 앞날이 암담하게 느껴질 때도 있다. 친구에게 말하기도 싫고 일하기도 싫고 산책하기도 싫다······. 모든 일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보통은 영화 관람, 쇼핑, 운동 등으로 기분 전환한다. 불안하고 우울할 때 재미있는 일들을 하면 일시적으로 불안감이 해소된다. 하지만 잠깐 신경을 다른 데로 돌려 일시적으로 마음을 가볍게 하는 것일 뿐 불안감이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사실 세상에 의미 있는 일은 없다. 무슨 일이든 다 사라진다. 그래도 살아 있다면 어쨌든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집중할 수 있는 일, 우리를 성장시킬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열심히 해야 한다.
작지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일들을 해 보자. 바로 수행이다. 수행이라고 하면 대부분 심오하고 복잡한 것으로 여기겠지만 사실 불교의 수행은 아주 쉽고 간단하며 일상생활에서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작은 행동에 인생을 본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수행의 핵심은 진심에서 우러나서 지금 당장 해야 한다는 데 있고, 삶의 의의는 의미 있는 일을 하는 데 있다.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앉아서 천천히 불경을 읽거나 베껴 쓰는 것이다. 《금강경》도 좋고 《법화경》도 좋다. 천천히 읽거나 한 자 한 자 베껴 쓰면 된다. 경문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어도 상관없다. 차분히 읽거나 쓰기만 하면 된다. 수많은 세월을 전해 내려온 경문 속에 담긴 이야기와 가르침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에 깃들 것이다.
티베트 승려 종사르 켄체 린포체는 “나는 매일 《금강경》의 게송을 몇 개라도 꼭 읽는다. 이것은 우리가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 모르는 주문을 외우는 것보다 훨씬 가치 있는 일이다. 가능하다면 이 불경을 직접 직접 베껴 써서 다른 사람에게 선물한다면 매우 유익한 일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좋다. 날마다 불경을 읽고 베껴 써 보자. 여러 가지 불경을 읽을 필요도 없다. 《금강경》을 좋아한다면 《금강경》만 읽고 쓰고, 《법화경》을 좋아한다면 《법화경》만 읽고 써도 된다. 많이 읽거나 길게 쓰지 않아도 된다. 설령 한 문장이라도 상관없다. 정토종 설법을 좋아한다면 수시로 아미타불을 입으로 외우기만 해도 된다.
남을 험담하지 않는 것도 아주 작은 일이지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많은 사람이 지키지 못한다.
지금부터 남을 험담하지 않는 것을 실천해 보자. 아주 작은 일이지만 계속 실천하면 인간관계가 완전히 바뀔 것이다. 또 환경이 오염되었다고 원망하고 남들이 휴지를 함부로 버린다고 나무라지만 말고 바로 지금 이 순간부터 길에 휴지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면 직접 주워서 휴지통에 넣자.
예전에 홍일대사는 언제 어디서든 앉을 때 개미 같은 작은 생물이 있지 않은지 살펴본 후에 앉았다고 한다. 모르는 사이에라도 살생하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다. 그 작은 행동 속에 커다란 자비심이 깃들어 있었다. 산다는 것은 허울뿐인 말 위에 사는 것도 아니고, 허무한 이론 위에서 사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바로 지금 생생한 이 순간을 살고 있고, 지금 우리가 하는 행동 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므로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작은 말과 행동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작은 일들을 꾸준히 하다 보면 상상하지 못했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수행의 의의다. 일상을 자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수행이라고 생각한다면 불안하든 우울하든, 살면서 부딪히는 수많은 문제가 수행 과정에서 천천히 해결될 것이다.



불안하고 즐겁지 않아 앞날이 암담하게 느껴진다면
작지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일을 해 보라.
더 나은 삶을 살고 싶다면
작은 말과 행동으로 시작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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