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3. 06:40ㆍ여러 가르침 (經,律,論)
어느 날, 부처님이 제자들과 함께 모여 있는 자리에서 연꽃 한 송이를 가만히 들어 보였습니다. 그러자 가섭이라는 제자가 홀로 빙그레 미소를 지었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화두인 ‘염화미소(拈花微笑)’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가섭은 왜 미소를 지었을까요? 대체 이 이야기에는 무슨 뜻이 담겨 있을까요?
부처님은 깨달은 분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서 있거나 밥을 먹거나 걸음 하나를 걸을 때에도, 그 행동 안에 지혜와 자비가 들어 있습니다. 일상의 모든 순간에 번뇌와 망상이 없는 평화롭고 고요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바로 그런 번뇌와 망상이 없는 마음으로 꽃을 들어 보였고, 가섭 또한 부처님과 같은 지점에서 꽃을 보았기에 그 마음을 그대로 알아보고 미소 지은 것입니다. 그래서 염화미소란, 말로 통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깨달음을 전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가섭처럼 빙그레 미소 지을 수가 없어요. 꽃을 보고 자신의 지난 경험을 떠올리거나, 추측하고 상상해서 보기 때문이죠. 어떤 사람은 ‘저 꽃 나도 갖고 싶다’ 이런 욕심이 들 테고, 지식이 좀 있는 사람은 ‘아, 부처님은 진흙탕 속에서 연꽃이 피어난다고 하셨지. 아마 우리에게 이 험한 세상에서도 흔들림 없이 연꽃과 같은 맑은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걸 거야’ 하고 추측하기도 하죠. 그래서야 꽃을 제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부처님이 든 꽃과 마찬가지로 세상의 모든 것들을 볼 때, 우리는 욕심을 부리거나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추측하고 상상합니다. 그것은 결국 실제를 보는 일이 아니라, 내가 만든 의식으로 보는 것이죠. 내 의식이 아닌 무아적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식당에서 밥 한 끼를 먹으면서도 끝없이 시비하는 마음을 냅니다. 음식이 ‘맛있다’, ‘맛없다’를 분별하고, 지난번에 갔던 식당보다 ‘낫다’, ‘못하다’를 분별하며, ‘다음에 또 와야지’, ‘다신 오지 말아야지’ 같은 시비를 끊임없이 나누는 거죠.
그렇다면 부처님은 똑같은 음식을 먹으면서 어떻게 생각할까요? 맛으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쌀 한 톨이 정말 귀하다’, ‘이 음식을 만든 사람의 정성이 대단하다’, 이렇게 음식에 담긴 연기적 관계성을 함께 보게 됩니다. 시비를 가리고 차별을 하는 게 아니라, 음식 하나하나에 담긴 귀한 정성을 보고 먹습니다. 단순히 맛을 따지는 차원이 아닌 거죠. 이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행복하고, 음식이 나에게 오기 전까지 거쳤을 농부의 땀과 땅과 햇살, 빗물, 바람, 맑은 공기를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시비하지 않고 본질을 보는 거지요. 본질을 본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의 존재나 현상을 보더라도, 거기에 연관되어 있는 수많은 것들을 함께 보는 것입니다. 차 한 잔을 마셔도 그 오랜 세월, 차나무에서 차 이파리가 하나씩 나오던 때, 그걸 쑥쑥 자라나게 한 햇빛과 빗물과 바람, 찻잎을 따고 덖는 노고와 내 앞까지 오는 데 쏟은 수많은 존재의 수고와 정성을 함께 보는 것입니다.
시비 분별, 번뇌 망상이 있기 이전의 마음, 비교하기 이전의 마음, 나라고 하는 개념이 있기 이전의 마음. 부처님은 항상 그런 마음으로 행동합니다. 그런 마음에서 꽃을 들어 보인 것이지요. 무아를 체득하고 나의 의식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화두와 같은 강력한 무기가 필요합니다. 꽃을 든 부처님의 마음, 그 꽃을 보고 빙그레 미소 짓는 가섭존자의 마음, ‘그 마음이란 도대체 무엇이지?’ 하고 끊임없이 궁금해하고 답을 찾아야 합니다.
나의 본래 마음을 알고 싶다.
그 물음은 결국 이런 뜻이기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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