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9. 17:09ㆍ흐린날의 소리
“실체가 없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도 없고 태양에 딸린 행성도 없는 텅 빈 공간만 있다면, 그 공간은 실체를 갖지 못한다.”

위의 두 문장 중 하나는 기원전 5세기 무렵 부처가 한 말이고, 하나는 20세기 최고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둘 중 어느 말이 부처가 한 말일까. 놀랍게도 밑에 있는 두 번째 문장이 부처가 한 말이고, 첫 번째 문장이 아인슈타인이 한 말이다.
이처럼 과학의 첨단인 현대물리학과 동양사상의 한 축인 불교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존재한다. 이 같은 연관성이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었다. 절대시간과 절대공간 개념이 중심이었던 물리학이 득세했던 시기에 과학과 불교는 도저히 같은 차원에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나오면서 절대공간과 절대시간 개념은 퇴조했고 불교와 과학의 연관성에 관한 이야기가 학계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다음 문장을 보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인간 본연의 한계를 깨닫고 물질적 욕망을 채우려는 욕심을 버릴 때, 우리는 가치 있고 조화로운 삶을 성취할 수 있다.”
부처의 가르침에도 비슷한 말이 있다.
“욕망을 버리지 못한 인간은 덫에 걸린 토끼처럼 사방을 헤집고 다닌다. 그러므로 중생이 스스로 무욕의 경지를 추구함으로써 욕망을 떨치게 하라.”
불교가 현대과학이 어렵게 이룩한 업적들을 이미 오래전에 깨우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시작이 같았기 때문이다. 과학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배경 속에 숨겨진 진리를 찾아내는 일이다. 불교 역시 그랬다. 인간은 왜 태어나고 병들고 죽는가의 문제에서 출발했다. 결국 같은 걸 고민했던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동양사상은 순간적인 초탈이 목적이었고, 현대과학은 실험과 수식으로 이것을 밝혀내고 해결하려고 했다는 것뿐이다. ‘아인슈타인과 부처’(황소걸음 펴냄)라는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불교 진리 중에 ‘불생불멸(不生不滅)’이라는 게 있다. 세상에는 새로운 것도 사라지는 것도 없다는 말이다. 즉 사람은 죽어도 세상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태워 재가 되든 땅속에서 미생물의 먹이가 되든 그 형태를 바꾸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현대 환경이론의 기본이다.
적도에 사는 사람이 버린 오염물질이 형태를 바꿔 여러 단계를 거쳐 에스키모의 몸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현대과학의 사상적 체계를 동양사상에서 찾는 노력은 학문의 역사에 새로운 시각을 가져다주는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매일경제신문 <허연의 북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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