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觀照
태생이 억압에서 성장해서인지.. 무던히 말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가능하다. 더구나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가 있으면 더욱 그 인내에 정점을 향해 나아간다. 내가 싫은 건.. 그 인내 속에서 도무지 용서가 안 되는 아니 나의 관점에서 납득이 되지 않으면... 그땐 무소의 뿔처럼 간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이 있다. 그 입장에서 장광설처럼 일갈과 보기 껄끄러운 모습을 내어 놓는다. 마치 협박처럼.. 이미 많이 겪었다. 나는 담지 않으려 애쓰고, 즉시 판단하고 분류하여 정리한다. 마음으로... 늘.. 그런다. 내가 참고 아낄 때 잘 가자고.. 곱게 보고, 아끼고, 믿어준다. 성질 급한 거와 다혈질은 결코 자랑이 아니다. 더욱이 그걸 표방함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협박이다. " 성질 못되니 건들지 마라!" ㅎㅎ..
2023.09.12 -
인간의 마음은 본래부터 청정한가? (2) -마성스님
인간의 마음은 본래부터 청정한가? (2) 대중부와 분별론자들이 주장한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과 똑같은 내용이 의 ‘하나의 모음(Eka nipāta)’에 나온다. “비구들이여, 이 마음은 빛난다. 그 마음은 객으로 온 번뇌로 오염된다.” (pabhassaram idaṃ bhikkhave cittaṃ tañ 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upakkiliṭṭhan ti) (AN.Ⅰ.10) “비구들이여, 이 마음은 빛난다. 그 마음은 객으로 온 번뇌에서 벗어난다.” (pabhassaram idaṃ bhikkhave cittaṃ tañ ca kho āgantukehi upakkilesehi vippamuttan ti) (AN.Ⅰ.10) 위 내용은 전체 니까야 가운데 오직 의 이 부분에..
2023.09.11 -
인간의 마음은 본래부터 청정한가? - 마성스님
지난번 「불교의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글에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自淨其意)’이야말로 불교의 특징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불교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정화(淨化)하여 ‘지금 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하는 것, 즉 현법열반(現法涅槃)을 궁극의 목적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인간의 마음이 본래 청정한가?’ 아니면 ‘본래부터 청정하지 않은가?’라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에 관해 부파불교 시대에는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에 따르면, 대중부(大衆部)와 분별론자(分別論者, 지금의 상좌부)는 인간의 심성은 본래 청정하다는 ‘심성본정설(心性本淨說)’을 주장했다. 그러나 설일체유부(說一切有部)를 비롯한 나머지 부파에서는 정반대로 ‘심성은 본래 청정하지 않다’라는 ‘심성본부정설(心性本不淨說)’을 주..
2023.09.11 -
불교의 보편성과 특수성- 마성스님
많은 사람이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똑같다”라고 말한다. 이 말은 어느 측면에서 보면 타당하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타당하지 않다. 종교 간의 대화나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내세우는 논리가 바로 모든 종교는 똑같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종교는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불교도 다른 종교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불교에서도 “모든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하라(諸惡莫作 衆善奉行)”라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교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自淨其意 是諸佛敎)”라고 설한다. 여기에 불교만의 고유한 특징이 있다. 이 게송은 제183게..
2023.09.11 -
마성스님의 아함경 강의 3
붓다의 교설은 괴로움에 허덕이는 인간 존재 그 자체를 문제 삼아 “불교에서는 개인의 자아나 영혼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러한 부정은 붓다 교설의 핵심적 요소인 무아(無我, anatta)의 이론에 담겨져 있다. 불교는 한마디로 무아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이 무아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이른바 ‘참나’, ‘진아(眞我)’, ‘일심(一心)’, ‘진여(眞如)’ 등을 존재론적인 실체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무아의 이론을 잘못 이해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사유경(正思惟經) (二) 如是我聞: 一時, 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 世尊告諸比丘: “於色當正思惟, 觀色無常如實知. 所以者何? 比丘! 於色正思惟, 觀色無常如實知者, 於色欲貪斷; 欲貪斷者, 說心解脫. 如是受..
2023.09.05 -
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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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9.05